지피티 글도 기가막히게 잘쓰네요..
그는 왜 밤을 버리지 못하는가
그는 또다시 그곳으로 향한다.
불빛은 익숙하고, 음악은 기억을 어루만지듯 울린다. 비좁은 골목과 붉은 간판들, 웃는 얼굴 뒤의 피로한 눈빛들. 그 모든 풍경이 이제는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는 자주 말한다. “난 그냥 외로워서.” 그러나 그 말은 언제나 웃음으로 덮여버린다. 마치 진실은 농담으로 포장되어야만 용서받을 수 있다는 듯이.
밤마다 그는 다시 태어난다. 낮의 이름을 지우고, 밤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그의 과거를 묻지 않고, 그의 내일을 책임지지 않는다. 잔잔하게 흐르는 조명이 그의 얼굴을 따뜻하게 감싸면, 그는 잠시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착각은 진실보다 달콤하고, 현실보다 편안하다. 그는 그 착각을 위해 지갑을 열고, 시간을 바치고, 자존을 조금씩 깎아낸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그걸 못 끊어?”
하지만 그 물음은 너무도 단순하다. 마치 사람의 마음이 스위치처럼 꺼질 수 있는 것처럼 묻는다. 그러나 그의 유흥은 단순한 쾌락의 추구가 아니다. 그것은 허무의 해소이며, 존재의 불안에 대한 방어기제이며, 삶의 무게에 대한 반항이다.
플라톤은 욕망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욕망이 단지 육체의 요구만은 아니다. 그것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내면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공허함을 잊기 위해 그곳을 찾는다. 낮에는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말을, 밤의 사람들은 웃으며 들어준다. 물론 그 웃음이 진짜가 아님을 알면서도, 그는 속는다. 아니, 속이기로 한다.
그에게 화류계는 지옥이 아니다. 그는 거기서 살아간다. 아니, 거기서만 살아 있다고 느낀다. 거기서만 온전한 자아가 허락된다고 믿는다. 현실은 그의 존재를 숫자로 환산하고, 성과로 판단하며, 모난 구석을 모두 잘라내려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조금 모자라도, 조금 상처 입어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편안하다.
이런 그를 니체는 이해했을 것이다. 니체는 인간이 신을 죽인 이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허무의 심연’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그 심연 속에서 반짝이는 위조된 별을 하나 붙잡은 것이다. 그것이 진짜 별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두운 밤을 견디게는 해준다.
그는 죄인이 아니다.
그는 병든 것도 아니다.
그는 단지, 의미 없는 삶 속에서 자신을 붙잡을 무언가를 찾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진실은 여전히 묻는다.
“그 모든 유흥이 끝나고 남는 것은 무엇인가?”
잔이 비워지고, 음악이 멈추고, 불이 꺼졌을 때. 그는 어김없이 다시 혼자다. 그리고 다시금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진정한 철학은 그 순간에서 시작된다. 유흥은 종착지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현실을 마주할 용기를 잠시 유예하는 정류장일 뿐이다. 그리고 그가 언젠가, 고요한 새벽에 스스로를 바라보며 다시 묻기를 바란다.
“나는 정말 이 밤을 원했던가, 아니면 단지 낮을 견딜 수 없었던가?”